삶을 아름답게 비추어주는 죽음



최인형 수녀 (노틀담 수녀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죽음을 잊고 지냅니다. 눈앞에 닥친 일들과 바쁜 일상에 치여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의 한편으로 밀려납니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다가오는 현실이며 이를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본질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죽음을 가까이서 맞이한 이들은 삶의 매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길 안내자 같습니다. 최근 제 사촌 동생과 선배 수녀님이 암 선고를 받은 후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으나 곧 그들이 진정으로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들을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침대에 앓아누워 있을 시간에 자신의 학문과 경험들이 세상에 도움 되길 원하는 취지에서 원고를 쓰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수녀님은 두려워하기보다 주변 정리를 하며 하느님께로 돌아갈 준비를 단호하고도 차분히 시작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숙연해졌고 ‘나라면 어땠을까?’를 곰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죽음은 두려워 떨어야 하는 공포가 아니라 살아있는 시간을 가치 있게 채우는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처럼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삶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눈을 뜨게 되고 미뤄왔던 것을 실행할 힘을 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새로운 발걸음입니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 보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삶과 죽음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같은 길에 서서 마주 보는 친구와도 같습니다. 죽음을 의식하며 살 때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 감사해야 할 것을 더 잘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위령성월인 11월! 
잠시 멈추어 서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들여다보며 살아있는 오늘을 귀하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소중했던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달로 채워 가시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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